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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호] 옥중 K씨 "나는 LG전자 윗선의 지시에 따라 위증했다" 2005·12·20 10:31
‘왕따메일 후폭풍’이 거세다. 발단은 ‘왕따메일’이 조작됐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가 위증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 LG전자 대리(현 LG엔시스 차장) K씨의 ‘옥중 실토’가 알려지면서 비롯되고 있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올해 7월, K씨는 서울구치소에서 동료 수감자 P씨를 종종 만나 ‘LG전자 윗선의 지시에 따라 (왕따메일과 관련) 어쩔 수 없이 위증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P씨는 본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K씨는 (나에게) 복직하기 위해선 법정에서 위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음을 수 차례에 걸쳐 실토했다”고 말했다. (주)LG전자의 징계규정에 따르면 <법에 의해 기소되거나 기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때><모략 중상 또는 유언비어 유포 등 비위사실이 있을 때>에는 ▲징계해고 ▲권고사식 ▲강직 ▲정직 등 중징계를 받는다. 이에 따르면 K씨의 복직은 장담키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법정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K씨는 만기출소 후 별탈 없이(?) 복직한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심지어 법정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대리→과장→차장으로 순조롭게 승진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K씨의 위증에 ‘배후조정자’가 있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왕따메일’후폭풍의 전모를 집중 취재했다.
99년 5월27일. LG전자 컴퓨터사업부(현 LG엔시스)에 ‘왕따메일’ 한통이 돌았다. 발신인은 당시 대리(현 차장 진급) K씨. K씨에게 왕따메일의 작성 및 회람을 명(命)한 장본인은 H실장(당시 직함)이다. 수신인은 컴퓨터 사업부 소속 대리(당시) 정국정씨를 제외한 50명이었다. “〔필독〕업무전달!!!”이라는 문구로 시작된 왕따메일의 골자는 대략 네 가지. ▲정씨의 ID 회수 및 다모아(직원이 공유하는 메일) ID 공지 금지 ▲정씨 PC 사용금지 당부 및 (적발 시 해당 PC소유자) 책임추궁 ▲다모아 메일 발신 시 정씨 수신인 대상에서 제외 ▲회사 비품 정씨에게 빌려주는 행위 금지 등.
정씨에겐 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정씨는 LG전자와 하청업체의 검은 커넥션 의혹을 사내 회계감사팀에 제보한 내부고발자였다. 정씨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LG전자를 위해 내부고발을 결정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다.
K씨 의도적 허위증언
감춰진 진실은 무엇?
그러나 내부고발 이후 정씨는 조직적으로 왕따를 당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회사동료들도 공감한다. 실제 정씨는 왕따메일이 회람됐을 당시, 구조조정대상자로 선정돼 ‘퇴직원제출 권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 일환으로 LG전자측은 PC·전자메일 ID·개인사물함을 모두 회수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업무는 고사하고 근무자리도 창가에 홀로 배치됐다. 왕따를 당했다는 것이다. 결국 2002년 2월 정씨는 LG전자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일방적 통보였다.
정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서울 지노위)를 방문한 것도 그 무렵. 권리구제를 받을 요량이었다. 정씨는 “절박한 심정으로 서울 지노위를 찾았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해 7월. 정씨는 ‘사내 왕따’로 인정, 산재승인을 받았다. 이는 왕따로서 국내 최초의 산재승인이다. 정씨가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왕따메일의 실체를 서울 지노위측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정씨는 또 다른 악재(惡材)에 시달렸다. LG전자가 ‘왕따메일을 위조해서 권리구제를 도모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씨를 고소조치한 이후부터다. ‘사문서 위조혐의’는 정씨에게 덫 씌워진 또 하나의 주홍글씨였다. 이에 대해 정씨는 “LG전자는 왕따메일의 실체를 내부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나를) 사문서 위조혐의로 고소했다”고 목청을 한껏 높였다. 실제 LG전자는 ‘왕따메일’사건이 발생한 직후 내부검증과정을 통해 왕따메일의 실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르면 LG전자는 왕따메일의 실체를 알고 있음에도 정씨를 ‘왕따메일의 위조범’으로 고소한 셈이다.
왕따메일의 발신자 K씨는 정씨 관련 공판 내내 LG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핵심증인으로 맹활약(?)했다. K씨는 수 차례에 걸쳐 왕따메일의 실체를 부인했다. 왕따메일을 정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취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K씨의 공판진술의 일부 내용이다.
“∼정씨는 워낙 위조를 많이 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제목:〔필독〕업무전달!!!’이라고 돼 있는데 나(K씨)는 그런 식의 명령조의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LG전자가 제기한 정씨의 사문서위조혐의는 무혐의로 결정됐다. 반면 K씨는 모해위증죄로 지난 1월20일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문제는 K씨가 무슨 이유에서 위증을 하고, 법정구속형까지 감수했는지 여부. 정씨는 “K씨 스스로 위증을 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K씨에게 위증을 지시한 윗선이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K씨는 깃털일 뿐이고 진짜 몸통을 따로 있다는 견해다.
과연 그럴까.
K씨는 법정구속이 확정된 후 서울구치소 ○동○반에 수감됐다. K씨는 함께 수감됐던 동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시기 K씨와 함께 수감됐던 P씨(사업)는 “K씨가 수 차례에 걸쳐 ‘법정 위증은 내 의지가 아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면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K씨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배포도 크지 않았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면서 실형을 감수할만한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실제 K씨는 LG전자 윗선으로부터 위증을 당부 받았다고 토로했다.”
P씨는 또 ‘K씨가 LG전자와 구자홍 LG전자 전 회장(현 LS그룹 회장)에게 발송할 요량으로 내용증명까지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내용증명을 실제로 발송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P씨는 “K씨는 입버릇처럼 보냈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랬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P씨의 주장에 따르면 K씨는 ‘윗선’의 령(令)에 따라 위증을 했다. K씨가 시쳇말로 ‘모든 것을 덮고’ 수감된 셈이다. 사실이라면 LG전자와 구 전 회장에게 K씨는 충신(忠臣)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K씨가 충신(?)이라는 사실은 최근 인사조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K씨는 지난 8월 만기출소했다. 이후 LG엔시스에 별탈 없이(?) 복직했다. 여기엔 몇 가지 애매한 대목이 있다. (주)LG전자의 징계규정에 따르면 <법에 의해 기소되거나 기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때><모략 중상 또는 유언비어 유포 등 비위사실이 있을 때>에는 ▲징계해고 ▲권고사식 ▲강직 ▲정직 등 중징계를 받게 돼 있다. 그 과정에서 징계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함은 당연한 절차다. 이 징계규정은 통상 (주)LG의 계열사인 LG엔시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게 전직 LG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K씨의 복직과정에선 단 한번의 징계심사위원회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K씨는 모해위증죄로 법정소송을 벌이는 동안 대리→과장→차장으로 승진했다. ‘K씨가 개인문제로 법정구속됐다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K씨에게 위증을 지시한 윗선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정씨는 “(위증 명령을 내린) 윗선은 왕따메일의 진실을 호도한 채 고소를 지시한 사람”이라고 못 박았다. 정씨의 주장이다. “왕따메일이 존재함에도 이를 인정치 않고 사문서위조로 고소했기 때문에 무고죄(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고발하거나 고소함)가 충분히 성립된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왕따메일은 위조됐다’는 등 법정위증을 종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K씨에게 위증을 지시한 사람은 왕따메일의 진실을 왜곡하면서 (사문서위조 혐의를 들어) 고소를 직접 명한 장본인이다.” 이어 정씨는 그 윗선을 구 전 회장이라고 지목했다. 실제 정씨는 구 전 회장을 ‘무고 및 위증교사’ 혐의를 들어 고소한 상태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검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정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하다는 게 한 법조인의 주장이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우선 LG전자가 정씨를 사문서 위조로 고소할 당시, 구 전 회장이 (LG전자 모 상무에게) 직접 위임장을 썼다. 소송 일체에 대해 구 전 회장 명의로 위임을 했던 것. ‘구 전 회장은 정씨 관련 소송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LG전자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정황이다.
구 전 회장 무고죄 고소
서울고검 현재 수사 중
그 뿐 아니다. 왕따메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99년, 구 전 회장이 왕따메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99년 7월29일 정씨는 구 전 회장을 신라호텔에서 직접 만나, 왕따메일 등에 대해 탄원을 했다. 또 8월 중순, LG전자 인사기획팀은 정씨의 탄원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구 전 회장에게 올렸다. A4 한 장 분량의 <컴퓨터 고객실 정국정 탄원서 관련 경과보고>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엔 제1항 경과내용부터 제4항 향후계획에 걸쳐, 왕따메일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요약돼 있다. 더군다나 구 전 회장은 이 보고서에 “MM(멀티미디어) 사업본부와 긴밀하게 협력해서 처리하고 필요시 CU장과 협의합시다”라고 자필로 기술했다. 여기서 CU장은 구 전 회장을 뜻한다. 이는 구 전 회장이 왕따메일의 실체에 대해 상당부분 인지했다는 반증이다. 또 왕따메일의 진실을 완전 호도한 것으로 밝혀진 LG전자의 ‘왕따메일 위조(사문서 위조) 고소’ 에 구 전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고소를 지시한 사람이 구 전 회장이므로 K씨에게 위증령(令)을 내린 장본인도 구 전 회장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의혹에 대해 LG엔시스, LG전자, LS그룹은 이구동성으로 “우리쪽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LG엔시스는 ‘LG전자 시절 있었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는 투다. 반대로 LG전자는 LG엔시스에서 발생한 일이라면서 책임을 슬쩍 떠넘기고 있다. LS그룹은 한술 더 뜬다. “LG전자 회장 시절 있었던 일을 우리가 알 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강변하고 있다. 반면 정씨는 “구 전 회장이 왕따메일 사건에 연루돼 있는 것은 진실”이라면서 “구 전 회장은 형사소송법상으로 무고죄를 피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9월 국정감사 질의
문제 심각성 적지 않아
이처럼 지난 99년 불씨가 당겨진 왕따메일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왕따메일의 당사자 정씨는 연신 구 전 회장과 LG전자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반면 LG엔시스, LG전자, LS그룹측은 연신 남탓 뿐이다. 이 문제는 올 국정감사에서 질의될 정도로 그 문제가 제법 심각하다는 평가다. 대검 역시 국정감사에서 “서울 고검의 수사가 마무리되면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 왕따메일 사건을 둘러싸고 새어나오는 각종 의혹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윤찬 기자
|직격 인터뷰| K씨 서울구치소 동기 P씨
“K씨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복직 여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P씨가 왕따메일 사건과 관련, 모해위증죄로 법정구속된 전 LG전자 대리 K씨를 만난 것은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올 7월 경. K씨는 P씨와 만난 자리에서 “LG전자 윗선의 지시를 받아 위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또 “복직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P씨에 따르면 K씨는 구자홍 LG전자 전 회장(현 LS그룹 회장)과 박계현 전 컴퓨터사업부장(현 LG엔시스 사장)에게 보낼 <내용증명>까지 작성한 상태였다. <내용증명>을 실제로 보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P씨는 “K씨 스스로 수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주장해, 그런 줄 알고 있지만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K씨를 만난 것은 언제인가.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 올해 중순경인 것 같다.
- 어디서 만났나.
▲K씨는 서울구치소 신입방 ○동 ○반에 수감됐다. 한풀 꺾여 있었다. 배짱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강구실로 불렀다.
- 강구실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 한 동에 하나의 강구실에 있다. 그 곳에서 수감자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관례가 있다.
- 무슨 얘기를 하던가.
▲K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 입을 열던가.
▲그렇다. LG전자 윗선에서 허위증언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윗선을 구체적으로 한정하진 않았지만 종종 구 모 회장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자홍 전 회장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 K씨가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얘기도 있다.
▲ 맞다. 수차례 보냈다고 말했다. 진실을 알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충고를 했다.
- 실제로 보냈는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알 수 없다.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 K씨가 수감 중 가장 걱정한 것은 무엇인가.
▲복직을 가장 우려했다. 혹여 복직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더욱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자기가 진실을 말하면 복직이 요원해 진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P씨는 본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그리고는 대뜸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닌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감방에 보낸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조롱이었다. 과연 P씨가 지칭한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답을 K씨와 구 전 회장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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