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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법원 안에선 대체 무슨 일이?
현직 판사 "나는 법원직원에 왕처럼 군림"
판사 존댓말 사용에 복장 단정 '부드러운 변신'
[오마이뉴스 김용국 기자]
▲ 남의 분쟁만 해결해왔던 법원이 내부문제로 시험대에 섰다. 이번 사태를 대법원이 어떻게 매듭지을지 법원 구성원들은 주목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2006 김용국
사회에서 집단이나 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법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원의 가장 큰 역할을 '분쟁의 해결'로 꼽고, 1년에 수십만 명이 법원을 찾는다.
그렇다면 법원은 내부 분쟁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최근의 법원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대법원은 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내부통신망의 글쓰기를 막아버렸고, 법원 공무원들은 법원내 민주화, 언론자유 보장을 외치고 있다. 도대체 법원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법원공무원이 판사의 사과를 요구하게 된 사연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의 ㅈ판사는 전날 야간영장 당직을 맡았다. 그런데 검찰은 ㅈ판사가 발부한 영장 중에서 구속장소가 잘못 기재된 것을 발견했다. 검찰이 정정을 요청하자 다시 출근하게 된 ㅈ판사는 당직 공무원들을 불러서 당직할 때 확인을 철저히 하지 못한 잘못을 지적하면서 사실확인서 작성을 요구했다.
직원들은 난색을 표하다가 결국 확인서를 작성했고 이 과정에서 낮 12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ㅈ판사와 공무원 3명이 판사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은 지난 19일 '판사 개인의 실수를 공무원에게 전가하고 공무원들을 6시간 넘게 사실상 감금한 ㅈ판사의 공개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법원공무원들도 "판사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 직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며 분개하기 시작했다. ㅈ판사는 "잘못된 업무관행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태가 커지자 대법원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약 1주일간 조사한 끝에 대법원은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당사자 누구에 대하여서도 별도의 책임을 묻는 조치는 취하지 아니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취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대법원은 ㅈ판사가 종전의 법원에서 계속 근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전보했다.
법원노조는 "당사자의 사과도 없고, 책임도 묻지 않은 상태에서 유야무야 넘기려 한다"며 반발했다. 법원노조 임원과 직원 50여 명은 지난 27일 대법원에서 항의농성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강력하게 대응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법원, 내부 게시물 삭제에 글쓰기 금지까지
▲ 지난 4월 27일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대법원장 면담을 위해 대법원장실로 이동하려 하자 법원 경비대원들이 이를 막아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6 신종철
이에 대해 대법원도 강수를 두고 있다. 지난 19일 내부통신망에 법원노조가 올린 성명서를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을 비롯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글과 대법원의 처사를 비판하는 글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28일부터 내부통신망의 글쓰기 기능을 차단했다. 인신공격,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어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항의농성을 하며 단체행동을 하는 노조 임원들에 대한 징계방침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노조는 "언론의 자유를 지켜줘야 할 법원 안에서 군사정권 하에서나 있을법한 언로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법원행정처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가능한 법적 조치를 취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법원공무원들이 크게 반발할 정도로 사태가 커진 데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동안 법원당국이 판사와 법원공무원을 차별하여 대우하고 법원공무원들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팽배했기 때문이다. 6천명 이상의 법원공무원으로 구성된 법원노조의 최송립 사무처장은 "올해 초부터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대법원은 법원노조가 설립신고를 하지 않은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거부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또 판사가 법원공무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관계에 있지 않은데도 그동안 법원에서 관행으로 그렇게 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법원공무원들은 내부 통신망과 법원노조 홈페이지(www.bubwon.org)에 의견을 쏟아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하는 박희우(창원지방법원) 계장은 지난 25일 내부 게시판에 ㅈ판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을 올려 "ㅇ판사가 표현한 '지휘감독'이라는 말속에는 은연중 일반직(공무원)에 대한 판사의 우월감이 배어 있다"며 "일반직을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법원노조 홈페이지에는 "아무리 법원이 바뀐다 해도 법원은 판사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대법원에서는 국민을 섬기라고 난리다, 자신의 가족조차 챙길 줄 모르면서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가?"와 같이 감정적인 글도 이어졌다.
이정렬 판사 "판사가 왕처럼 떠받들어진 데서 비롯"
법원공무원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올린 반면 판사들은 대부분 사태를 관망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일부 판사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정진경 부장판사(고양지원)는 지난 26일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미국 법원을 방문해 판사들을 만났을 때 원두커피를 판사가 손수 들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다리를 꼬고 앉아 웃어가며 대화를 하는데 그 격의없음이 매우 부러웠다"며 "오랜 기간 수직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우리도 당장은 어렵겠지만 서로간의 마음을 열고 노력하여 대등한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정 판사는 "사법부는 재판이 본연의 업무이니만큼 업무와 관련해서는 판사를 중심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겠지만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동지로서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여 살맛나는 직장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수중인 이정렬 판사(서울남부지법)도 28일 법원노조 홈페이지(www.bubwon.org)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판사는 "판사와 일반직(공무원)은 분쟁의 해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조·협력하는 관계"라며 "일반직원을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판사가 왕처럼 떠받들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판사들에게 "일반직을 보는 눈과 인식을 좀 바꾸자"고 제안하면서 "그 분(공무원)들도 당연히 존경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끝으로 "이번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원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남의 분쟁만 해결해왔던 대법원이 시험대에 섰다. 이번 사태를 대법원이 어떻게 매듭지을지 1만명의 법원 구성원들은 주목하고 있다.
/김용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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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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