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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나홀로 시위꾼’ 다모였네
‘공권력사법피해자모임’ 회원들 대검청사앞 집회
노윤정기자 prufrock@munhwa.com
“아이고, 마산 아주머니 오셨습니까.”, “김해 할머니도 데리고 왔어예.”, “서부 아저씨 오랜만이여….”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앞. ‘붉은 조끼’ 군단 20여명이 모였다. 검찰청사앞 시위대는 낯선 풍경이 아니지만 이날만큼은 좀 특별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싸움꾼’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속칭 나홀로 시위꾼, 나홀로 소송꾼들이다. 이들이 지난 5월 30일 함께 모여 ‘공권력사법피해자모임’을 결성했다.
대검 청사 앞에 모인 회원들은 얼핏 보기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서울, 부산, 마산, 대구, 김해 등 방방곡곡 출신에 나이도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동백아가씨’ 가사를 개작해 만들어온 투쟁가를 목청껏 부르며 피켓을 높이 흔드는 이들의 모습에는 묘한 어울림이 있다. 하나같이 햇볕에 검게 그을은 얼굴과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사연이다. 제아무리 소리를 높여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자, 이들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공권력사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은 나름대로 ‘유명인’들이다. LG전자에 근무하다가 사내 왕따를 당해 해고된 정국정(43)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올해로 6년째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와 남부지검, 대검 앞을 떠돌며 시위를 펼치고 있다.
역시 LG트윈타워 앞의 ‘소복 아주머니’로 유명한 김종말(63)씨는 3년째 나홀로 시위를 펼치고 있다. 김씨는 “LG투자증권에 다니던 아들이 왕따로 고통받다 음독을 시도한 뒤 실명했다”고 했다. 소복 시위를 펼치던 김씨는 여의도에서 정씨를 만나 ‘LG그룹 왕따피해자모임’을 결성했다.
‘마산 노점상 아주머니’ 하모(58)씨는 올해로 시위 5년차다. 노점상을 하다가 마산시청 공무원들과 싸움이 붙은 뒤 매일같이 마산시청, 마산 경찰서를 오가며 시위를 하고있다. 현재 진행중인 소송만 무려 5건이다.
하씨는 전국의 나홀로 시위꾼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상경했다. 올라오는 길에 대검청사 수위실앞에서 안면을 튼 ‘김해 할머니’ 윤순님(83)씨도 함께 데리고 왔다. 1989년 농지계량조합에 땅 수만평을 뺏겼다는 윤씨는 억울한 사연을 묻는 질문에 “김해시 한림면 가산 277번지, 윤순님”만 거듭 반복했다.
‘서부지검 택시 아저씨’도 빼놓을 수 없다. “다니던 택시회사의 불법행위를 고발한 뒤 해고당했다”는 한성수(53)씨는 3년째 서울 서부지검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씨는 시위를 하느라 돈을 벌지못해,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파트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온라인 시위로 이름을 날린 회원도 있다. 이 모임 이원구 회장은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해고를 당했다. “택시회사의 차량 불량정비로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년째 대검 ‘국민의 소리’ 게시판에 매일 한건씩 탄원서를 올리고 있다. 사법피해자모임은 대검 게시판과 청사앞에서 자주 마주친 민원인들을 끌어모아 이씨가 결성한 단체다. 그는 현재 택시회사와 부당해고, 고소고발, 산업재해 등 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각기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6년째 검찰, 경찰, 정부부처, 시청 등 소위 ‘공권력’과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다. 법리상 도저히 이기기 힘든 경우도 있고, 실제로 말이 되지않는 사건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가슴에 한이 사무쳐 싸움을 그칠 수가 없다.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모였습니다. 무시당하는 데는 다들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혼자 시위하다 20명이 함께 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리는 없겠지요. 그저 혼자 시위하고 싸우기가 힘이 드니까 함께 싸워보자는 순수한 취지입니다.” 이 모임 이원구 회장은 “재판이 있을 때, 회원들이 함께 가서 법원앞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겠냐”며 소박하게 웃었다.
노윤정기자 prufrock@
기사 게재 일자 200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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