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꼭꼭 숨기고 있는 치부가 드러날 지 몰라서다. 겉으론 별일 아니라는 듯 애써 태연한 모습. 하지만 그 속은 까맣게 타고 있다. 딱 잡아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LG생활건강이 갑자기 표정 관리에 들어간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자체 감사서 직원 수십억 납품비리 적발
사법조치 대신 사직 처리 조용히 마무리
LG생활건강이 내부 감사를 실시해 직원의 납품 비리를 적발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지난 5월 자체 감사를 벌여 전·현직 직원들의 부당거래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서로 짜고 자신들이 설립한 C사를 LG생활건강의 협력업체로 지정, 상당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져졌다. 이들은 C사를 차명으로 관리·운영해 왔다. 한 직원은 자신의 회사란 점을 감추기 위해 부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나머지 경영진도 대부분 주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차명 협력사 운영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자리 잡고 있는 C사는 상품 포장재 제조·납품업체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2006년 설립하자마자 LG생활건강에 판촉품 및 부자재 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C사는 제과업체, 백화점 등과 거래하기도 했지만, LG생활건강이 가장 큰 ‘손님’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지방의 공장을 인수하는가 하면 최근엔 사업영역을 무역업으로 확대했다.
2008년 매출 26억원을 올린데 이어 지난해 36억원을 기록했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직원들이 LG생활건강과의 거래를 통해 수년간 챙긴 돈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작은 거래라도 협력업체 선정은 반드시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 차원에서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 회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LG생활건강은 특정 직원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임의로 결정한 업체와 거래해 허술한 협력업체 관리·감독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LG생활건강은 초비상이 걸렸다. 감사 내용이 외부로 새어나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내부적으로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는 한편 일부 부서엔 함구령까지 내렸다는 후문이다.
실제 LG생활건강은 직원의 비리를 적발하고도 ‘사직’수준에서 조용히 마무리했다.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하지 않는 등 사법 처리 대신 현직 직원만 해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서둘러 덮은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외부 시선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LG생활건강 측은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별일 아니라는 듯 딱 잡아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마디로 내부 문제를 어떻게 알았냐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이 설립한 회사를 거래업체로 선정한 뒤 물량을 밀어준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난 것은 맞다”며 ‘내부 비리’적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즉각 해당업체와 거래를 중지했다. 곧바로 해당 직원은 사표를 제출했고, 회사는 이를 수리한 상태”라며 “법적 처리 문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감사 내용을 어떤 경로를 통해 알았냐”며 “(본인도) 얼마 전까지 몰랐으나 몇몇 언론에서 취재가 들어와 관련 부서에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알았다”고 당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LG생활건강이 이번 문제를 ‘쉬쉬’하는 이유는 최근 바짝 얼어붙은 그룹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요 계열사들이 각종 악재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LG생활건강마저 내부 비리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그룹 차원에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실적 악화로 ‘위기론’에 휩싸였다. 일부에선 대규모 구조조정설까지 나돌고 있다.
“어떻게 알았냐”
LG텔레콤(전 LG데이콤)은 지난달 말 접속료 부당이익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현재 별정통신업체에 통신망을 불법 대여해 수십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LG하우시스는 ‘협력업체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 업체 대표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LG하우시스 직원들에게 골프 접대, 여행 경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수억원의 돈을 뜯겼다고 폭로해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무엇보다 LG생활건강의 내부 비리는 구본무 회장이 1995년 회장 취임 이후 줄곧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 ‘정도 경영’과 오버랩된다. 이는 도덕성을 핵심가치로 삼고 있는 LG생활건강의 경영 방침이기도 하다.
구 회장은 “경제가 어렵고 경영 환경이 불확실 할수록 바르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대내외 신인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얼마 전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