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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대기업에 맞서다 죽어나는 다윗 중소기업
정부와 대기업이 말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치지만 대기업의 횡포로 망가져 신음하는 중소기업인들이 꽤 많다. 골리앗의 불공정 거래와 특허 기술 강탈 등에 맞서 싸우는 다윗을 찾아보았다.
기사입력시간 [150호] 2010.08.03 09:47:57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때리는 재벌 기업보다 재벌 편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법원이 더 밉다.” 대기업의 횡포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원망이다. 한국 전체 기업 수 중 99%, 일자리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하지만 정부와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아직도 홀대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은 앞에서 상생협력을 외치면서 뒤로는 중소기업을 쥐어짜거나 기술 등을 강탈하는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대기업에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인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사법부, 언론과 국회 등에다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하소연한다. 하지만 막강한 재력과 로비력, 인맥을 통해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거미줄처럼 연계망을 구축한 대재벌의 힘 앞에 이들의 절망은 깊어만 간다. 피해 중소기업이 재벌의 잘못을 인정받고 억울함을 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청와대제공
지난 5월14일 청와대 녹지원에 초대받아 대통령 연설을 듣는 400여 중소기업인.
하지만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적게는 6년부터 많게는 10년씩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을 벌여온 피해 중소기업인들이 있다. 한국 사회의 대표 재벌 기업인 LG와 삼성으로부터 불공정 거래를 당하거나 기술을 빼앗긴 이들이다.
먼저 서오텔레콤 김성수 대표는 대기업 LG와 10년째 기술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다. 20여 년간 기술 하나로 기업을 이끌어온 정보통신 분야 전문 벤처기업가인 김성수 대표가 LG그룹 계열사 LG텔레콤과 악연을 맺은 때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대표는 흉악범에게 조카딸을 잃는 끔찍한 사건을 겪고 나서 위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긴급구난 기술 발명에 심혈을 기울였다. 2년여 연구한 끝에 휴대전화에 장착한 비상 버튼을 몇 초만 누르면 미리 입력된 긴급 연락처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이른바 ‘이머전시 콜’ 개념의 기술을 고안해냈다.
김 대표는 당시 LG텔레콤 측과 만나 자신이 발명한 긴급구조 서비스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상담을 했다. LG 측에서 김 대표에게 관련 기술자료 일체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해 그들을 믿고 사본을 넘겨줬다. 하지만 기술자료 일체를 가져간 LG는 특허청에 서오텔레콤의 기술특허가 등록된 뒤에도 ‘상용화하기에는 너무 앞선 기술이니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
LG의 중소기업 기술 강탈 작전 교범
이제나저제나 상용화 시기만을 기다리던 김 대표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LG텔레콤이 2004년 초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이 기술을 활용한 ‘알라딘 폰’을 출시하며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때마침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이어서 김 사장이 최초 고안한 긴급구난 서비스 특허 기술이 때를 만난 격이었다. 하지만 LG는 이 기술이 자기네 것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제서야 LG가 기술을 강탈해갔다고 눈치챈 김 사장은 LG텔레콤을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지리한 특허 분쟁에 들어갔다. 당황한 LG텔레콤은 알라딘 폰이 특허도용 소송에 휘말리자 판매를 중단했다. 대신 법정에서는 이 기술에 별다른 진보성이 없다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시사IN 조남진
LG와의 특허 분쟁에서 대법원 판결로 승소했지만 아직도 피해 배상을 못 받은 서오텔레콤 김성수 대표.
하지만 이런 LG의 태도에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기술 강탈 작전이 숨어 있다는 증거가 포착됐다. 김성수 사장은 LG와 특허 분쟁 과정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 특허를 강탈해가는 ‘숨은 전략’을 발견하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LG의 특허전략 세미나에서 그룹 특허담당 부장이 주제 발표한 녹음 테이프를 확보한 것이다. “중소기업과 개인 발명가들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면 그 기술이 좋다는 내색을 절대 하지 마라. 중소기업과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즉시 특허권리무효심판청구를 해놓고 시간끌기 작전으로 몰고 가라. 시간을 끌면서 의견서를 많이 제출하도록 하는 것도 작전이다. 특허 분쟁을 하는 중소기업의 특허는 못쓰게 만들어버려라.” 바로 LG그룹 특허담당 책임자로부터 나온 이 같은 내부 교육용 자료는 이후 LG가 서오텔레콤의 특허 분쟁 과정에서 그대로 써먹은 일종의 ‘매뉴얼’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게 불리한 중소기업 여건에서 대재벌과의 특허 싸움을 4년 이상 끌면서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1, 2심 판결은 대기업 LG에 유리하게 났다. 그러나 2007년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LG가 서오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확정판결했다. ‘서오 쪽 특허의 진보성을 부정한 것은 발명의 진보성에 대한 법리 오해’라고 판시함으로써 비로소 서오텔레콤은 LG에 권리를 침해당한 12개 특허기술을 원상회복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김성수 대표는 헌법재판소에 검찰이 LG텔레콤의 특허 강탈 혐의를 무혐의 처리한 것이 부당하니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심리한 결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LG텔레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는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헌재 판결문을 근거로 김성수 대표는 LG텔레콤을 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또 각하 처리했다. 이를 계기로 대재벌 LG가 우리 사회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는 그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대법원 확정판결과 헌법재판소의 승소 판결문을 받아든 김 대표에게 이후 오랜 고통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LG 측은 책임질 뜻이 전혀 없었다. 결국 김 대표는 LG를 상대로 알라딘 폰 출시로 인해 특허를 침해당했으니 그에 합당한 변상을 하라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LG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패한 뒤에도, 우연히 자기네가 보유한 기술 중 서오텔레콤과 비슷한 비교대상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 알라딘 폰을 출시한 초기인 2004년 2월까지는 서오텔레콤 특허와 동일한 기술을 사용했지만 이후 생산된 제품은 특허 침해 소지를 피하려고 서오 특허와 효능은 같지만 내용은 다른 기술을 썼다는 이상한 주장도 내놓았다. 이에 대해 IT업계 전문가들은 재판부에 ‘LG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요지의 소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LG는 “대법원 판결이 서오 측 특허를 인정해준 것은 맞지만 우리가 그것을 도용했다고 판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요지부동이다.
최근 열린 이 사건 항소심 법정에서 김성수 대표는 최후 진술 발언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IT 특허를 150건이나 등록했다가 LG에 특허 자료를 준 뒤 도용당해 7년째 싸우고 있다. 거짓을 동원해 재판관까지 농락하는 이런 대기업의 못된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고 도태돼야 한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권력 쥔 사람이 이기는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
삼성의 하도급 횡포로 무너진 한진건업
삼성의 횡포에 맞서 6년간 지칠 줄 모르고 싸우는 중소기업인도 있다. 건설 설비 공사업체인 한진건업을 27년간 운영하던 반성오 대표는 삼성엔지니어링과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가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회사가 부도나고 화병까지 얻어 처절하게 망가진 피해자다. 그는 2004년 1월 삼성전기 부산공장 신축공사를 삼성엔지니어링(주)로부터 하도급 계약을 맺고, 2004년 8월31일 공사를 완료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공사대금 중 24억7500만원을 받지 못해 그해 말 결산에서 22억여 원의 적자가 발생함으로써 한진건업은 폐기됐다.
중소기업 한진건업을 상대로 한 삼성엔지니어링의 하도급 횡포는 최초 공사를 맡길 당시 삼성의 불법 행위로부터 시작됐다. 한진건업은 건설공사 표준 하도급 계약서와 정부 품셈 등을 기준으로 총 59억2000여 만원의 공사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삼성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정규 계약서 이면에 하도급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특약 조항을 넣은 뒤 이를 근거로 공사대금 정산금을 34억7000만원밖에 줄 수 없다며 버텼다. 한마디로 삼성이 한진건업에 이행을 강요한 하도급 계약에서 특약 조항은 공정위 지침 및 대법원 판결에 따라 법 위반 행위로 간주돼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불법 하도급이었다.
ⓒ시사IN 안희태
삼성으로부터 하도급 공사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폐기된 한진건업 반성오 대표.
더구나 공사 도중 삼성엔지니어링의 본부장이 한진에 보낸 문서에서도 공사비가 42억원이라고 인정했고, 삼성 본사 발주팀에서도 공사비 50억원 정도를 인정했지만 공사가 끝나자 삼성의 태도는 표변했다. 정당한 공사비 정산을 요구하는 한진건업에 대해 삼성엔지니어링은 “적법하게 다 정산해주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떼를 쓴다”라는 식으로 묵살한 것이다. 이후 삼성은 신고든 소송이든 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큰소리쳤다.
공사를 발주하고도 정당한 공사대금을 주지 않은 삼성의 횡포에 회사를 잃고 화병까지 생겨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반성오 대표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공정위·검찰·법원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가 겪은 대한민국 공권력은 대부분 삼성 편이었다. 먼저 그는 공정위에 불공정 하도급 피해 사례로 구제해달라고 신고했다. 하지만 삼성의 하도급법 위반 내용은 객관적 증거 서류가 명백해 누구나 쉽게 밝혀낼 수 있는데도 공정위는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반성오 대표는 공정위 담당 공무원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 역시 각하 처리됐다. 항고·재항고, 감사·재감사 등 억울한 마음에 할 수 있는 절차는 다 거쳤다. 하지만 뚜렷한 설명도 없이 검찰에서는 무조건 ‘각하’나 ‘기각’이라는 통지서만 보내왔다.
그나마 중소기업을 고사시킨 삼성을 다소라도 견제한 쪽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이 사건 소송에서 공사대금과 지연이자를 포함해 삼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한 34억7500여 만원 외에 15억9000여 만원을 한진건업에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한진건업은 이미 부도가 난 뒤였고, 반성오 대표도 심한 정신적·육체적 충격으로 병을 얻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사회적 재기가 불가능해진 뒤였다. 지금도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중소기업인을 망가뜨린 행태에 대해 ‘법대로 처리했으니 그만’이라는 태도이다.
“6년간 싸우면서 삼성의 힘 앞에는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삼성의 허위 주장은 통하고, 하청업체의 진실은 묻히는 비통한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행정제도만이라도 제대로 개선되어야 한다.” 반성오 대표가 말하는 제도 개선의 핵심은 민원 신고인에 대한 투명한 조사 정보 공개다. 현 정부 들어서도 반 대표는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삼성의 하도급 횡포를 둘러싼 공정위와 검찰의 잘못된 행정 처리 및 위법 행위를 고발하고 진정했다. 하지만 이런 진정과 고발 건은 뺑뺑이를 돌듯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공정위의 감사실로 되돌아왔다. 이를 지켜본 반성오 대표는 “공정위나 검찰도 중소기업의 고통을 잘못 처리하면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감찰 제도가 개선된다면 나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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