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던 한 협력업체 사장이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 동분서주하던 중 국가기관의 부실 행정 탓에 사지에 내몰렸다. LG전자의 탈세 혐의가 분명한 데 이를 불문처리한 담당 세무서가 과실을 인정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 이에 이 기업가인 자신에게 처한 위기에 격분하다 이런 세상이 돼버린 우리 사회의 현실 때문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전 LG전자 협력사 대표였던 김종혁 신우데이타 사장은 1년이 넘게 LG전자 영등포 사옥 건너편 여의도공원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왔다. 그는 LG전자가 협력사를 상대로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서슴지 않은 것은 물론 일방적인 계약파기로 자신과 자신의 직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LG전자는 김종혁 사장의 주장이 전부 거짓이라며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해 양측은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김종혁 사장은 LG전자와 소송을 진행하며 자신 주장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5년 발생한 신우데이타 자회사 이코리아와 LG전자 간의 허위거래 사실을 국세청에 고발했다.
김 사장은 “당시 협력업체 입장으로서 거래 유지를 위해 LG전자의 강압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양사간에 이뤄진 거래는 실물이 없던 허위 가공 거래로 LG전자측이 탈세를 위해 자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김종혁 사장의 제보에 따라 LG전자 탈세 사건 조사에 들어갔으며, 지난해 말 탈세혐의가 사실인 것을 확인하고 양측에 과세를 결정했다. 하지만 LG전자에서는 세무서의 과세결정에 대해 김종혁 사장의 진술은 모두 허위이며, 현재 진행 중인 검찰조사에서도 LG전자측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내용의 과세전적부심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탈세 사건을 맡았던 영등포세무서는 LG전자 요구를 받아들여 과세적부심의위원회를 열었으며, 이를 통해 LG전자 탈세사건을 불문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김종혁 사장은 LG전자의 탈세가 사실로 입증이 되어야지만 자신의 나머지 주장 역시 법원에서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 질 것이기에 영등포세무서의 불문처리가 잘못됐다는 민원을 국세청에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이 과정에서 LG전자의 과세전적부심의 제출이 조세법 상 허용되지 않는 사항임을 알았다.
현재 김종혁 사장은 심의를 제기한 LG전자 법무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과세전적부심의를 받아들이고 이를 불문처리한 영등포 세무서라며, 영등포 세무서가 성실한 납세자를 보호하지 못할망정 직권 남용 및 직무유기를 자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세 혐의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LG전자>
LG전자가 탈세?
김종혁 사장의 신우데이타는 1990년대 말부터 LG-IBM의 협력사로 등록돼 LG의 PC제품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공급·판매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5년 LG-IBM PC사업부가 LG전자로 흡수된 뒤로는 LG전자의 판매대행으로 전락했으며 2008년에는 판매대행 계약마저 종결됐다.
김 사장은 계약해지에 대해 “2005년 이전까지 신우데이타는 우수협력사로 인정받아왔다”며 “계약파기 원인은 LG전자가 자회사 출신 임원이 운영하던 불법 도급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표는 “LG전자의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그 이전에 진행된 대행수수료 연체 문제로 신우 직원들의 임금이 밀린 사태가 발생했다”며 사업권 강탈에 대한 보상과 밀린 직원들 임금 문제 해결을 LG전자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LG전자는 김 사장의 주장이 모두 허위라며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상태다. 또한 이미 판결이 난 민사 1심에서 법원은 LG전자측 주장 일부를 받아드려 김종혁 사장에게 LG전자가 요구한 3억원의 민사 청구액 중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김종혁 사장은 이에 항소를 제기한 것은 물론, 자신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드려 지지 않은 이유가 탈세 혐의 누락으로 신빙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혁 사장은 “탈세의혹은 위장 도급 등이 무조건 아니라고 하는 LG전자의 거짓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나 역시 손해를 감수해야 할 사실들을 공개한 것”이라고 밝히며 LG전자의 탈세의혹은 사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과세전적부심의 절차의 오류 수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영등포 세무서>
탈세 의혹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
김종혁 사장이 주장하는 탈세 의혹과 관련 세무서가 이를 불문처리한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처음 이 문제를 지적한 시점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김 사장은 지난 2008년 중순경부터 LG전자의 탈세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당시 국세청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김종혁 사장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탈세문제를 거론한 초기 국세청은 LG전자의 회사 규모를 감안할 때 수억원 정도의 탈세 문제를 지적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그래도 법을 위반했는데 국세청이 자꾸 모른 척해 이를 언론에 알렸고 언론사 기자를 동행해 문제제기를 하자 그제야 국세청 조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김 사장의 말처럼 국세청은 LG전자의 탈세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지난해 10월 경 LG전자와 이코리아 간의 거래 내역이 허위일수 있고, LG전자가 탈세를 저질렀다는 제보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내리고 이를 담당세무서인 영등포세무서에 이송했다.
사건을 맡은 영등포세무서에서는 2009년 12월 말경 김종혁 사장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LG전자와 김종혁 사장 양측에 수억원의 과세를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영등포세무서가 과세를 결정 후 LG전자에서 제출한 과세전적부심사청구서를 통해 이 문제와 관련 또 한 번 심의에 들어간 점이다. 현 국세청 대변인이자 당시 영등포세무서장 참석한 영등포 세무서의 적부심의에서 영등포세무서는 LG전자 탈세의혹을 불문처리하기로 결정 내렸다.
탈세의혹만 밝혀지면 모든 게 해결될 걸로 알았던 김 사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결과인 것이다. 더욱이 김 사장은 영등포세무서의 불문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항의를 국가기관에 제기하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듣게 됐다. 바로 영등포세무서의 과세 청구가 이뤄진 이상 조세법 상 LG전자 탈세 사건은 조세범칙사건이며, 이와 관련 과세전적부심의를 신청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김종혁 사장은 “현행법이 허락하지 않는 심의를 연 점에서 영등포세무서와 LG전자의 유착관계가 의심된다”며 “현 국세청 대변인인 당시 영등포 세무서장은 자신이 자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세무서가 성실한 납세자를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한 직무 유기”라며 “더욱 비참한 건 한 번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세무서측의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