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 초 총선정국은 느닷없이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요동치면서 한동안 혼란에 빠졌었고, 그 결과 여당이 과반수를 넘으면서 국회에서 다수당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으로 정치권이 충격에 빠지면서 잠시 진공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이르러 사대개혁입법을 놓고 여야 간에 다시 힘겨루기가 시작되면서 정치는 실종되고 의회정치는 다시금 파행을 경험하고 있다. 개혁의 시대에 국회는 국민의 미래를 위하여 활동하는 진일보한 모습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더구나 대화와 타협을 위한 민주적 기본절차도 무시되는 상황은 상생을 통한 정치적 평화를 갈구하는 국민의 희망과 너무도 달라서 국민을 또 다시 실망케 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민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이고,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가의 주인이다. 그러나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이 갖고 있는 규범력도 정치권의 힘 앞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인 것 같다.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안건들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소위 민주적으로 정당화된 국회에서 여야 간의 대치로 표류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오직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하는 정당간의 다툼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밀고 당기면서 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밀어붙이고 결사적으로 막는 대립의 모습은 국민의 권리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2004년도 속절없이 지나가 이제 끝자락에 왔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일년 내내 이해다툼으로 한해를 보냈다 하여도 이제 쌓인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희망 가득한 새해로 향하여 갔으면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가기관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란다. 그래서 헌법이 요구하는 바에 의하여 실제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