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피고인이 검찰조서에 담긴 자백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하는 것만으로 검찰조서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검찰조서의 증거능력 부여와 관련한 지난해 12월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조서를 부인하면 조서는 휴지조각이 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용균 부장판사)는 23일 폭력조직 영등포남부동파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상 단체 등의 구성ㆍ활동)로 구속기소된 진모(32)씨에 대해 원심과 같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은 수사담당자들의 회유와 협박에 따른 것이므로 자백의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수사기관, 특히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이 법정진술과 다르다는 사유만으로 그 자백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단정하기는 매우 곤란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자백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백 진술이 객관적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자백의 동기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자백 이외의 정황증거 등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고인의 자백에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할 사정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기록을 살펴봐도 피고인이 자백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나 그 진술과정에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할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피고인은 영등포남부동파 조직원 단합 행사에 여러차례 적극 참여하는 등 이 단체 조직원으로 활동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진씨는 1999년 초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한 식당에서 가진 영등포남부파 결성식에 참여한 뒤 두목, 부두목, 자금책, 행동대장 등의 서열이 매겨진 지휘ㆍ통솔체계에 따라 조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보험사기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하고도 법정에서 부인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조서에 서명ㆍ무인한 사실을 인정하면 `실질적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고 1, 2심 모두 유죄가 인정된 사건을 파기해 전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검찰측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조서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조서가 강압이나 가혹행위가 없는 자유로운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면 증거능력은 인정된다"고 해석한 반면, 법원측은 "이번 판례에서 특신상태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고 향후 실무와 판례를 통해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며 다소 다른 입장을 보였다. lilygardener@yna.co.kr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