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죽기 전에 진실 밝혀야죠">
36년 만에 다시 법정 서는 70代의 '재심 스토리'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한 마디로 사필귀정(事必歸正) 이죠.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혀내야죠."
36년 전인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옥살이를 한 재심 청구인 정모(74.당시 36세) 씨는 14일 춘천지법이 자신의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자 '울컥'하면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해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 이후 흉악범으로 몰려 고통 속에 지내 온 36년 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듯 긴 한숨을 토해냈다.
1973년 3월 1심인 춘천지법에서 강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형이 확정돼 15년 간 무기수로 복역하다 1987년 가석방된 정 씨에게 있어 이번 재심 결정은 평생 간직해 온 억울함을 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없었다면 아마도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재심 결정 소식을 접한 뒤 가장 먼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정 씨는 "(내가) 무기수로 수감된 이후 아내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생선장사와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며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며 참았던 눈물을 토해냈다.
그는 이어 "지나간 고통의 세월을 이제와서 떠올려 봐야 남는 것은 고문 경찰관에 대한 미움 뿐이기 때문에 지금은 잠시 접어두려 한다 "며 "이제는 진실을 밝혀내는 데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정 씨는 이날 재심 결정에 앞서 지난 달 27일 열린 증인신문 과정에서 당시 자신을 고문한 경찰관을 만나 수십년 간 깊어진 갈등을 풀기 위한 화해의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법정에서 나온 정 씨는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의 수사 경찰관을 만나 "(나를) 고문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 화해하고 싶다"며 먼저 손을 건넸고 경찰관도 웃으며 정 씨의 손을 맞잡았다.
한편 당시 사건으로 무기수 복역했던 정 씨는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1987년 가석방된 이듬 해인 1988년 고향인 춘천을 등지고 전북 남원에 내려가 신학공부에 매진한 끝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1992년 목사가 돼 산골 개척교회를 세운 그는 현재까지 목회 일과 함께 사슴을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익은 교회와 무의탁노인 및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