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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에 '기소검사 실명제' 도입 논란
지난 국정감사서 본격 제기… 법원·검찰 입장은 서로 엇갈려
형사판결문에 기소(공소제기) 검사의 이름을 기재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원은 형사재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기소검사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공판검사의 이름뿐만 아니라 기소검사 이름을 판결문에 기재하는 데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면, 법무부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공판검사를 기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들 두 기관은 재판서의 기재요건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40조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공판에 관여한 검사의 관직, 성명’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기소검사의 이름을 판결문에 기재하는 것은 법개정 사항이라는 입장인 반면, 법원은 현행법 해석상으로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 박지원 의원 문제제기가 발단= 형사판결문에 기소검사의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다름아닌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다. 그는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12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전력이 있다. 금호그룹 등에서 1억원을 받고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혐의 등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3년 및 추징금 1억원이 확정됐다가 2007년 특별사면·복권됐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대법원과 대검에 대한 국정감사때 기소검사 실명제 도입을 요구했다. 그는 “기소검사의 역사적 책임을 위해서 판결문에 기소검사 실명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김용담 법원행정처장과 권재진 당시 대검차장에게 검토를 주문했다. 이어 11월 정기국회 대법원 현황보고 때 국감지적사항에 대한 조치상황을 질의하면서 또다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때 검찰출신인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이 ‘기소검사와 공판검사의 이름을 병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 법원, “국민 알권리 충족”= 판사들은 대체로 기소검사 이름을 병기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 이들은 공소를 제기한 검사의 책임감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공판검사가 공소유지를 하기 때문에 정작 공소를 제기한 검사는 공소유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판결문에 기소검사 이름이 기재되면 공소제기가 신중해지고 공소유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으로 판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기소검사 실명제가 도입되면 형사재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역사적인 평가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고인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형사재판에 대한 실질적 정보를 취득하고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법원 판결문은 영구보존대상인 반면, 검찰청의 공소장 등 형사기록은 내란·외환죄 등 일부 범죄에서 사형, 무기징역, 10년 이상 유기징역이 선고되거나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영구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일정한 보존기한이 경과하면 공소제기 검사를 확인하기 곤란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재심사건이 증가하고 있는데 워낙 오래된 사건들이어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등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이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책임을 묻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소했던 검사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을 물을 수도 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공판검사 뿐만 아니라 사건의 의혹을 제기했던 기소검사의 이름도 써넣어야 한다”며 “사실상 공판검사보다 사건의 시발점을 제공한 기소검사가 역사적 책임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우리부가 재판한 사건 중에 무죄가 선고된 경우가 있는데 애초에 부실수사가 있었던 것 같았던 사안이어서 판결문에 기소검사 이름까지 써 넣었던 적이 있다”며 “지금 어떤 법률에도 기소검사를 판결문에 쓰지 못하도록 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판의 개시에 직접적인 관여를 한 검사’인 기소검사도 형소법 제40조3항의 ‘공판에 관여한 검사’에 포함된다”며 “부실수사로 검찰 스스로 무죄판결을 자초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법원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검찰은 무죄가 선고될 경우 자체적으로 무죄이유를 분석해 기록하고 있다”며 “애초에 기소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공판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를 가려 검사평정에 반영하는 만큼 판결문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원행정처는 이러한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 최근 ‘판결문에 기소검사의 이름을 병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검찰, “검사동일체 원칙에 위배… 법개정 사항”= 법무부와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공판관여 검사의 기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변론종결 당시 재판에 관여한 판사만 판결문에 기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변론종결 이전에 사건을 심리한 판사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 등은 기재되지 않는다.
이들 기관들은 또 피고인에게는 공소장 부본이 송달되므로 기소검사를 알 수 있으므로 굳이 판결문에 기소검사 이름을 병기할 필요성이 없고 병합심리 사건의 경우에는 기소검사를 병기하기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반대이유로 들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작년 국정감사 때 이런 지적이 나와 개선여부를 검토한 적이 있으나, 형소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검토결과가 나왔다. 이후 법률개정을 추진하거나 더 진척된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형소법상 검사는 자연인인 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형의 집행 등 업무를 담당하는 의미의 검사를 말한다”며 “수사와 기소한 검사만 중요하고 공소유지 등의 활동을 담당하는 공판검사의 역할이 작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선 검찰청의 한 검사는 “피고인에게 송부되는 공소장에 기소한 검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굳이 판결문에까지 이름을 넣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외부에 공개되는 판결문에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기재할 경우 피고인이 아닌 제3자에 의한 불필요한 민원에 검사들이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판결문에 기소검사의 이름을 기재하는 것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기소검사가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무죄가 날 경우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범죄자를 엄벌했다고 (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검사실명제 도입에 찬성의견을 나타냈다.
◇ 외국은 공판에 실제관여 검사 기재= 독일과 일본, 미국 대부분의 주 등 외국 입법례는 모두 공판에 실제로 관여한 검사의 관직과 이름을 판결문에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무부는 이런 외국 입법례를 기소검사 이름병기에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우리와 외국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한 판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사건에서 공판검사가 형식적으로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있고, 과거 공소권 남용으로 인한 역사적 폐해를 경험하는 등 외국과는 사정이 틀리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irene@lawtimes.co.kr
김재홍 기자 nov@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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