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법관평가제, 재판 공정성 훼손하는 일 없어야
(서울=연합뉴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법관의 재판진행에 대한 평가 작업을 벌이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태도와 말씨, 친절도 등 자질 및 품위, 재판의 공정성, 사건처리 태도 등 17개 항목을 놓고 `매우 좋다'부터 `매우 나쁘다'까지 5단계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평가결과는 공개되지 않지만 평가자료를 인사 등에 활용하도록 대법원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변호사회의 평가 방침에 대해 사법부쪽은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며 벌써부터 우려와 불만을 나타내고 있지만 법관 평가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사법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법관의 재판 진행은 불가침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민.형사 소송을 막론하고 대다수 법관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소송당사자들의 진술과 조서, 변론 등을 토대로 공정한 판결을 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이며, 그것은 곧 양심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틀이 돼 왔다. 그러나 일부 법관의 경우 부여된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한 나머지 `법정의 왕'으로 군림하며 고압적이고 불성실한 재판 모습을 보이면서 원.피고뿐 아니라 소송대리인, 검찰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재판의 공정성마저 의심을 사면서 결과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현상까지 초래했다.
변호사회가 법관 평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행 초기엔 적지않은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법원 내부의 반발이다. 변호사들이 아무리 공정한 잣대로 법관을 평가하더라도 자신이 수임한 재판의 승패 여부를 초월해 재판 진행을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승소 판결을 내린 재판장에 대해서는 설사 재판 운영이 공정하지 못했더라도 높은 점수를 주게 되고, 반대의 경우 낮은 점수를 주면 결과적으로 재판장이 변호사의 평가에 신경을 쓰도록 만들면서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 침해는 물론 사법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이다. 이와는 반대로 법원 외부의 냉정한 평가가 재판 진행의 긴장감을 높이면서 법관의 성실성과 공정성을 한 단계 더 높이 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법관의 재판 진행이 외부의 진단과 평가를 받아야 할 만큼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국민으로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평가작업을 벌이기로 했다면 변호사회 역시 공정성의 시비가 일지 않도록 철저하게 해야 한다. 사건대리인으로서 소송당사자나 다름없는 변호사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평가를 내린다면 평가작업 취지의 정당성은 물론 변호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변호사회는 회원들의 판사 평가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평가분석 시스템를 구축함은 물론 불공정 평가 시비에 대비한 보완책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사법부 역시 변호사들의 이런 시도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내부적으로도 법관의 자질 향상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